음악뉴스(종교음악)

제목 국악찬양 외길… “기독예술문화재 1호로 기록됐으면…”
곽신명-유명해 목사 부부.

유명해 목사(71·성서국악예술대학교 총장). 우리 국악의 가(노래), 무(춤), 악(악기)이 함께 어우러지는 국악찬양으로 선교사역에 임하는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곡절을 겪어 왔다. 지금도 현장 사역자로 지속적인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엇이 그를 오직 이 한 길로만 정진할 수 있게 했을까? 2020년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도전을 줄 수 있는 '성서 국악'의 향기를 느끼기 위하여 국악찬양에 인생과 신앙을 거는 아름다운 삶의 현장을 찾았다.오랜 시간 외길로 걸어온 여성 사역자이지만 넘치는 카리스마가 있고, 사역에 관한 열정이 지금도 활화산과 같다. 그 열정이 '축복 마스터 컬렉션' 앨범에 담겨 있다. 이 음반은 한국적인 색채와 현대적인 감각에 성경 메시지가 강하게 표현돼 유명해 목사의 열정과 예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가(歌), 무(舞), 악(樂)의 외길 인생이시지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우리 춤과 가락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의 비전을 보여주셨고 그 길을 기쁘게 걷고 있습니다. 목사의 딸로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을 이겨내야 했으며 춤 속에서 부대끼고 할퀴고, 견디어낸 험난했고 질긴 내 춤의 인생길이었습니다. 불교문화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하던 기독교 교계의 멸시와 소외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춤만을 생각하고 춤만 추었습니다.”

- 목사의 딸이라고요?

“저는 감리교 부흥사로 활동하신 고(故) 유흥춘 목사의 4남 4녀 중 다섯째입니다. 저의 부친은 평양신학교 3기 졸업자입니다. ‘대한 수도원 원장’을 역임한 ‘전진(田鎭)’ 목사님을 통하여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등리교회’의 전도사가 되었고 목회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열정적인 부흥사로 활동하셨습니다. 저희 형제 중에 제가 아버지의 성격을 가장 많이 빼닮았다고 했지요. 5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하여 약관 20대에 무용학원과 무용단을 운영했으며, 민요와 판소리, 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와 가야금병창까지 폭넓은 국악을 익혔습니다.”

-목사님 당시의 어린 나이에 무용을?

“저의 길은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 두셨지요. 그 무용이 저의 인생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용에 탁월한 소질이 있어 각종 대회에 입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를 재롱이나 취미로만 알았고 보육과에 진학하길 바랐던 부모의 뜻과는 달리 저는 이화여대 무용과에 진학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무용수가 되겠다’라는 포부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심한 반대로 중도 하차해야만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거의 강제적으로 대전 목원대 보육과에 편입돼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 있는 무용에 관한 그 열정은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 보육과에 다녀도 마음은 콩밭에?

“그렇지요. 아버지 몰래 무용단에 입단해 활동하던 중 TV에 제가 무용하는 모습이 나온 것을 주변의 여러 목회자가 봤습니다. 목회자들의 빗발치는 전화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목사 자녀가 어찌하여 기생의 길을 걷느냐?”라는 심한 말도 들었습니다. 사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원하는 길로 보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주변 목회자들의 비난과 아버지의 목회 때문에 강제적으로 저의 머리를 깎아 버리고 ‘형도섬(인천)’에서 목회의 길을 걷도록 만들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전국 어린이 부흥강사’로 사역하던 경력을 바탕으로 그곳 섬마을에서 단독 목회를 시작해 정열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언제 국악을 하셨나요?

“하나님께서 정한 길은 떠날 수 없습니다. 2015년 고인이 되신 무형문화재 ‘우봉(宇峰) 이매방’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악에 더욱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조선 시대에 전해오던 전통춤의 원형을 변질시키지 않고 이어 오셨습니다. 아마도 대한민국 무용가 70%가 선생님의 제자라 할 정도입니다. 유일하게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살풀이춤’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늘이 내린 춤꾼, 한국 무용계의 거장’을 만나서 저는 ‘하나님이 내린 춤꾼’이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오직 ’춤’이라는 외길 인생만을 걸어왔습니다. 목회자이지만 무용학원 원장생활만도 지금껏 30년이 넘도록 했습니다.”

-인간문화재에게 배우면 인간문화재가 되어야?

“당연하지요. 우리나라는 국악이 마치 불교음악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자가 아니었다면 저도 우봉 선생님의 ‘승무, 살풀이춤’을 잇는 ‘국보(國寶)급’ 춤꾼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천보(天寶)급’으로 사용하고 계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인정보다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사명과 소명으로 평생을 사역에 전념하며 인간문화재의 길을 포기했으니 제1호 기독교예술문화재의 칭호를 받는 것이 작은 소원입니다.”

- 국악(國樂) 찬양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평생을 국악찬양을 하다보니 어느새 1000여곡의 국악찬양을 작사·작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경과 국악’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미국 선교사 ‘제임스 카임’을 만나게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저에게 성령께서 보내신 분이셨습니다. “왜 한국에는 한국의 노래로 만든 찬송가가 없고 미국의 찬송가를 그대로 사용하는가? 나는 한국 고유의 찬송가를 찾으러 수많은 한국교회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대형교회일수록 미국 찬송가를 따라하는 곳밖에 발견하지 못했다”라는 말은 저에게 ‘레마’와 같은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저의 인생을 ‘성서국악’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통해 선교에 헌신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성서국악찬양과 더불어 한국인들의 선에 잘 맞는 한국적인 춤사위로 메시지를 담아 은혜로운 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서춤찬양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북소리 장단에 맞추어 성서타악찬양을 만든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악기인 북소리가 민족에게 희망을 일깨워주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로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서국악찬양, 성서춤찬양, 성서타악찬양’의 세 가지를 ‘국악찬양’으로 정립하여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 가락을 통한 말씀찬양에 앞장서고 있는 유명해 목사의 음반 '축복'. 유 목사는국악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담아 '해설이 있는 유명해 성서국악 찬양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 퓨전 가스펠의 새로운 장르 개척이 벌써 20년이나?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퓨전가스펠 축복 1집’이 SONY KOREA를 통해서 처음으로 출시된 것이 2000년 8월입니다. 우리 국악의 장단과 양악의 리듬을 접목해 최초의 ‘퓨전 가스펠’이란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국악기, 오케스트라, 밴드 등을 접목하여 직접 작곡, 작사, 노래까지 부른 이 음반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이 음반을 녹음할 때 뮤지컬 명성황후의 주역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목소리를 담아 기독 문화계에 큰 반향을 몰고 왔었습니다. 그동안 목소리로 세상의 이야기를 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구석구석 그들의 신앙의 향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음반의 총연출을 맡았던 사람은 저의 큰딸(곽유림)입니다. 제 딸은 어린 명성황후역을 맡았던 배우이자 공연기획자입니다.”

- 집회에 늘 남편분과 동행을 하고 계십니다.

“제 남편이신 곽신명 목사님은 사역과 삶에 더 없는 동반자이며 든든한 버팀목으로 조언과 협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남편은 젊은 시절 코미디언이자 MC로 활약하였던 ‘럭키보이’입니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남편은 영화제작과 공연기획업에 종사하다가 목사의 딸인 저를 만나게 되어 개종한 후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숙종임금을 치료한 어의(御醫)를 배출한 가문으로 한의학의 전통이 이어받은 남편은 ‘세계 최초 칼라 치유법’을 발견하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많은 분의 질병을 치유하는 일에 남편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저는 국악 특히 북소리로 많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고 음악으로 치유를 하고, 남편은 실제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법으로 터치하시면서 치료합니다. 이러한 간증을 하려면 며칠 밤을 새워서 할 정도입니다. 특히 해외에서 함께 집회를 할 때는 많은 분들이 국악찬양을 따라하며 반응해 주시고 그 집회 현장에서 제 남편인 곽 목사님도 칼라 치유를 통해 저의 선교사역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곽 목사님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광주소명중앙교회와 어떤 관계로 사역을 하고 계신가요

“광주소명중앙교회의 김대성 목사님은 저에게 큰 동역자가 되어주고 계십니다. 목사님이 기도원에서 집회를 인도하실 때는 설교 전에 어김없이 저에게 먼저 순서를 주셔서 국악찬양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김대성 목사님은 제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 힘을 주시며 늘 기도로 동역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광주소명중앙교회에 등록해서 섬기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지금 기도행전을 진행하시며 코로나 시대에 철저한 방역을 통해 적극적인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 기독교계에 부탁하고 싶은 말씀은?

“우리의 문화가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아직도 우리 기독인들은 국악이 불교문화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와 가스펠 중에도 외국의 민요를 개사해 오늘날까지 은혜롭게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도구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사용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양음악만이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특히 국악과 양악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를 이루며 나아가야 기독교 음악이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독교가 이런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일꾼을 키워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술선교사, 예술교역자’ 가 전문적으로 배출되어서 ‘복음과 전통문화’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을 높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예배라는 희한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데 코로나 이후의 사역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의 사역도 변함없이 국악찬양을 통해 해외선교와 섬지역 선교, 교도소선교, 요양원 선교, 성서가무악 찬양집회를 순회할 예정으로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동역자와 물질 후원자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화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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