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뉴스(클래식)

제목 알아두면 의미 있는 클래식 음악가들②

변치 않는 것,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요

한 사람이 평생 같은 일을 하며 늙어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샐러리맨이든 아니든, 하나의 직업을 삶과 함께 살아낸다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을 테니까요. 때문에 우리들을 길러주신 부모님들께서 정년퇴직까지 일하셨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으실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분명 부모님들도 살면서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셨을 테니까요. 중간에 포기하거나 노선을 변경하지 않고 뚝심 있게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이 참 열심히 사셨다는 것을 조심스레 짐작해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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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이 시대를 사는 노익장(老益壯)들의 삶도 한 분 한 분 살펴보는 일이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분들의 삶을 통해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작은 메시지를 건넬 수 있다고 믿거든요. 또 종종 선배들의 “라떼는 말이야~”가 일상의 ‘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어른들의 경험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경우가 참 많기도 하고요. 사회생활 노하우부터 초보 부모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말 들어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무용담도 두고두고 유용했던 기억입니다.

제 아들이 3살인가 4살 되던 해 밥을 정말 안 먹어서 속을 끓였던 일이 있었어요. 그때 육아 선배였던 제 친구가 “반찬 투정하면 좋아하는 반찬만 계속 해서 먹이면 된다”는 조언을 해줬는데요.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식단을 먹여야 한다는 초보 엄마의 생각을 확 바꾼 한 마디였어요. 아이가 먹기 싫어하는 반찬을 먹이려 애쓰지 말고, 잘 먹는 것만 주라는 것이었어요. 뭘 먹든 먹으면 된다는 거죠. 그 말에 따라 저는 아들에게 생선 구이와 미역국 두 가지만 며칠 씩 줬어요. 그랬더니 식사 시간마다 아들과 실랑이 하던 일이 사라졌고요. 제가 편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참 지금 제 아들은 정말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현재 지구촌 클래식 음악계에도 평생 한 길을 걸어 온 연주자 분들이 많으신데요. 그 중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장인(匠人)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연주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해요. 그는 음악을 시작했던 어린 시절부터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부지런히 무대에 오르내리고 있으니까요.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을 포함해, 세계 여러 도시에서 크고 작은 연주회에서 진짜 노익장의 면모를 보여주는 피아니스트입니다.

“그거야 백건우 선생님이 피아니스트로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어요. 그의 연주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아직 많으니, 당연히 연주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러나 평생 연주자로 무대에 오르는 일은 스스로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순히 인기가 많은 연주자라고 해서, 늘 무대에 오르는 것은 아니거든요. 모든 연주자들은 연주라는 한 순간을 위해 매일같이 땀 흘리며 지내야 하니까요. 매일 기초 체력을 단련하는 운동선수들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활동을 줄이는 것 같아요. “이제 독주회는 힘들어서 못하겠어”라는 말을 하시는 거죠. 체력적으로 두 시간 가까이 되는 무대를 이끌 준비를 하는 일이 만만치 않고, 적당한 때가 되면 독주회부터 협연, 실내악 등으로 연주 횟수를 줄이는 겁니다. 대신 그 무대에는 후배 연주자들이 오르는 거죠. 그런 선순환이 반복되며, 오늘날의 클래식 음악계가 발전해온 것 같습니다.

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꾸준함 아닐까 싶습니다. 꾸준히 자신의 예술 세계를 연마하는 삶을 사는 모습이요. 백발이 무성하고,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음악을 조용하게 쉬지 않고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어느 해의 백건우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연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어느 해에는 다시 그의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고요. 또 일주일 동안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가 하면, 섬마을을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연주를 할머니 할아버지 관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했고요. 그는 피아니스트로 평생에 걸쳐 그가 할 수 있는 연주를 부지런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고, 숫자로 남는 것이 아니기에 더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건우 뿐만 아니라 평생 예술가로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가 늘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들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밑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제 삶에 적용시켜볼 만한 울림을 찾곤 하거든요.


검은 피부의 피아니스트 뉴욕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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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ve J. Sherman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가 지휘자 레오나드 슬라트킨이 이끄는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맥도웰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합니다. 그는 미국 클래식 음악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최초의 흑인 음악가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활발한 연주 활동을 잇고 있는 노익장 피아니스트입니다.


백건우와 동갑내기인 미국의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André, Watts 1946~)의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마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아마 지휘자 카라얀이나 주빈 메타, 혹은 안테 조피 무터나 조성진 아니면 랑랑까지 클래식 음악사의 굵직한 연주자들 위주로 알고 계신 분들은 분명 낯선 연주자일거에요. 그런데 앙드레 와츠는 우리가 기억해 두면 배울 점이 분명 있는 노익장 피아니스트입니다. 일종의 편견과 차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평생 걷고 있거든요!  

앙드레 와츠는 미국의 피아니스트입니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미군이자 흑인 병사였고, 어머니는 헝가리 계의 피아니스트였어요. 그의 어머니의 소중한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는데요. 당시 4살이던 앙드레 와츠는 바이올린에 영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그때부터 피아노에 소질을 나타냈고요. 어린 시절 앙드레 와츠는 연습을 무척 싫어했지만, 연주하는 일을 즐겼다고 합니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재목이었던 것 같아요! 참 모든 피아니스트의 자녀들이 그처럼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지는 않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이죠! 여튼 그는 8세부터는 다시 아버지의 나라인 미국으로 건너가 성장했습니다.  

앙드레 와츠가 세계무대에 데뷔하게 된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행운의 소년이었다고 설명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음악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이 한 번은 꿈꿔봤을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어느 날 예정되어 있던 스타 연주자가 갑자기 건강상의 이유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때 운명처럼 자신이 그 무대의 대타 연주자로 오른 후, 스타 연주자의 대열에 오르는 겁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수많은 음악가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데뷔를 했는데요. 앙드레 와츠도 그랬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던 캐나다 피아니스트인 굴렌굴드의 대타로 뉴욕필의 무대에 올랐습니다! 네 굴렌굴드는 실제로 복통을 일으켰고요. 마치 앙드레 와츠를 위해 쓰여진 시나리오처럼 그는 이 무대에서 뉴욕 청중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그는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는데, 공연장에 있었던 평론가뿐만 아니라 청중들은 새로운 피아니스트의 등장에 대단한 환호를 보냈다고 해요. 그때 그의 나이는 16살이었고, 대번에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스타 연주자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참 그는 이 대단했던 데뷔 무대에 오르기 2주 전,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청소년 콘서트’에 출연해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어요. 당시 ‘청소년 콘서트’는 미국 전역에 방송될 만큼 인기 있었던 연주회였는데요. 이 무대에 선 것은 그가 재학 중이던 음악학교의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었고요. 이 무대에 섰기 때문에, 굴렌굴드의 대타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겁니다.


1963년 뉴욕필의 ‘청소년 콘서트’에 출연해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16세 앙드레 와츠의 모습입니다. 이 무대로 인해 2주 뒤 그는 글렌굴드의 대타로 다시 뉴욕필과 협연 무대에 오르고요. 단숨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의 피부가 검은 색이라는 점도 당시 미국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흑인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거든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앙드레 와츠가 특혜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 억울한 부분도 많았을 거에요.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흑인 클래식 음악가들이 모두 그처럼 화려한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분명 그도 이러한 분위기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거고요.

그러나 그는 이러한 편견 중에서도 영광스러운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사건은 미국 방송 역사 상 최초의 기록인데요. 1976년 맨해튼의 링컨센터에서 열었던 그의 독주회는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되었는데요. 이는 미국 방송 역사상 처음이었다고 하고요. 또 그가 26세 때 예일대학교 측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는데요. 이 또한 당시 기준으로 최연소 수상자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그는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음악 축제에 단골로 초청되며 피아니스트로 꾸준한 무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를 세상에 소개해 준 무대였던 번스타인과 함께 했던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을 비롯해 수 십 장의 음반도 발매하며 성실한 연주자의 행보를 이었고요. 어린 시절 연습보다 연주하는 일을 즐겼던 그이지만, 이토록 많은 연주를 하려면 그는 분명 수많은 시간을 악보와 싸움하며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비결도 그러한 노력 이 밑받침되었기 때문이고요.

동갑내기 피아니스트인 백건우와 앙드레 와츠의 삶이 어딘지 모르게 닮아 보입니다. 그들이 가진 피아노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만큼은 진실로 느껴지고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더욱 그들의 음악이 깊어가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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